Fender Custom Shop 1960 Stratocaster Relic
팝레는 아마도 2014년에 끝났다.
사실 이미 음악적으로는 끝난 밴드를
내 미련으로 한 일년 더 잡고 있었다.
나는 생활의 변화로
창작을 더 이상 예전처럼 하지 못했으며
잦은 멤버 교체로 준비의 연속성 또한 떨어졌다.
아마 마지막 베이시스트의 유학이었나
마지막 기타리스트의 장기 여행이었나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우리는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
나는 사느라 바빴다.
직장을 다니고 아이가 태어났다.
신생아를 키우는건 잠과의 싸움이다.
아이는 깨우지 않고 오래 재워야 하고
우리는 그 사이에 조금씩 자둬야 했다.
당연히 소리를 내는게 목적인 기타라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데는 방해요소였다.
그렇게 고등학생 때 부터
16년을 항상 매일 당연스레 갖고 놀던 기타.
대학교 2학년 정도부터
12년 가량을 해오던 내 삶 자체였던 인디 밴드.
내 삶에서 한 순간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아쉽거나 놓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가족과 일이 채워졌다.
다시 말하지만 아쉽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가족이 더 큰 기쁨을 주었으니까.
그리고 10년 정도가 지났다.
아이가 크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이제 기타를 쳐도 낮잠에서 깰 신생아는 없으니.
종종 뮬에도 들어갔었지만 그 뿐이긴 했다.
2024년 말 좀 지쳐있었다.
번아웃은 이미 오래지만 건강적으로도 그랬다.
2025년 1월 1일 부터 금주를 시작했다.
갑자기 좀 공허했다.
아마 늘 함께하던 도파민이 빠졌기 때문이리라.
술로 매일 같이 채우던 도파민을
채울 새로운 가능한 건강한 존재가 필요했다.
갑자기 20년 전에 치던 스트랫이 생각났다.
맞아 스트랫 참 좋은 기타였지.
지금 다시 사려면 그냥 스탠다드를 살 순 없었다.
앞으로 내가 기타를 사면 얼마나 더 살까(오만일까 ㅎㅎ).
앞으로 내가 뭔갈 경험을 하면 얼마나 더 할까.
40이 넘으면 하나 하나에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샀다.

Fender CS 1960 Stratocaster Relic, 2009
(2025. 01 ~ 현재)
블랙 바디, 로즈우드 슬랩보드, 21프렛, 7.25 곡률
스몰헤드, 스파게티 로고, 민트 픽가드, 렐릭.
내가 원한 스펙이었다.
뮬에 한 일주일 잠복하자 매물이 나왔다.
물론 위에 거창하게 말한 것 치곤 소박하다.
커스텀샵 최신 모델도 아니고, MBS도 아니다.
요즘 기타값이 너무 비싼걸 어떡하랴.
하나 하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내일이 없이 살 수는 없다.
2025년 1월 11일이었다.
고속버스 택배로 기타를 받았다.
집에서 고속 터미널까지는 금방이다.
가는 내내 두근두근 했다.
하드케이스를 차에 싣고 집으로 왔다.
오는 내내 두근두근 했다.
이거 정말 즐거운 일이더라.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이 기쁘고 설레였다.
오랜만에 조건이나 성과없는 즐거움이었다.
무용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

현재의 라인업.
깁슨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악기 같다면
펜더는 정말 편의성만을 위한 악기 같다.
편하고 부담이 없다. 과도한 장식이나 복잡함이 없다.
모든게 교체 가능하다.
근데 그 단도직입이 요즘엔 굉장히 좋고 공감이 간다.
아무튼 그래서 지판도 다시 외우고
다시 뮬저씨도 되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다.
당연히 10년 전 처럼 밴드를 하고 창작을 하고
그런건 다시는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거 참 재미있는 거였더라.
처음엔 그냥 재미있어서 시작했던거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