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레코드하우스 스토리 4
7. 팝레코드하우스 4기-1
임 형과는 거의 8-9년 같이 팀을 했다.
중간 중간에 쉬어간 기간도 있고
팀 이름도 바뀌곤 했었지만.
팀이 그냥 우리끼리 재미있을 때는
그런 문제가 없는데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을 때는
서로 간의 생각과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당시 우리는 그럭저럭 가능성 정도는 인정받았지만
예를 들자면 Beck 에 나오는 얘기처럼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음악을 만들거나
라이브를 하지는 못했었다.
어딘가 한 구석 느슨한 부분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역시 내 잘못이 가장 컸을텐데
당시에는 멤버들을 다 푸시했던 것 같다.
결국 임 형이 못견디고 나가게 된다.
어느 비 오는 날 바다비 공연 끝난 후 였다.
그 날도 임 형은 유독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팝레를 더이상 같이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얘기했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임 형은 토닉스라는 밴드를 조직해서
리더겸 기타겸 보컬을 맡아 아직까지
본인이 가장 하고 싶고 적성에 맞는 것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우리 안에 가둬놨다 싶다.
아무튼 그리고 드럼 강 군도 팀을 나가게 된다.
비슷한 시기였을거라 생각한다.
팀을 하다보면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있을텐데
그 생각이 타인에 의해서 발현이 되어버리면
마치 도미노 처럼 퍼지기 마련이다.
베이스는 당시 김 군과 강 군이 잘 알고 있던
전기과 밴드 출신의 이 군을 영입하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인사는
보다 신뢰성이 있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그리고 나는 이 즈음에 다시 한번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건반 연주자를 팀에 영입하고 싶어했다.
다만 그게 엄청 적극적인 생각까지는 아니었어서
공연 2-3번에 한 번 정도 멘트로
주변에 아는 건반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2011년 2월 초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럼 안 군과 건반 문 양이 동시에 오디션을 보러 온다.
안 군은 아마 뮬에서 구인을 했지 싶고
문 양은 공연에서 홍보한 효과였다.
그 날도 별 생각이 없다가 앞에 다른 팀에 건반이 있길래
아 맞다 우리도 건반 있으면 좋겠는데 소개 좀 해주세요
라고 공연 때 말했더니 그 분이 소개시켜 주었다.
그 분은 이 양으로 나중에 이상의 날개까지 하게 된다.
문 양은 왠지 오래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안 군은 조금 하다가 흥미가 떨어졌어 라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정 반대였지만)
둘 다 전공자여서 실력에는 의심이 없었다.
밴드 인생 10년만의 최초의 5인조
나, 김 군, 이 군, 안 군, 문 양.
그리고 이 때 부터 약 2년 정도가
팝레의 전성기였던 것 같다.

2011. 07. 12.
새로 바뀐 멤버로 야심차게 싱글을 냈다.
Bye Bye라는 곡인데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고
수준이 높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대로 구현이 잘 된 곡으로
공연에서 항상 오프닝으로 사용했었다.
그만큼 이 곡을 많이 믿었다는 뜻이다.
같이 들어간 지하철역 이라는 곡도 좋아한다.
이건 아마 서울대입구역에서 방황하던
정서를 표현했던 것 같다.
자켓 표지도 내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창문으로 찍은거다.
색감도 구도도 아주 마음에 든다.
이 때부터는 레코딩을 담당했던 임 형이 없었으니
다른 방법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합정역 근처에 곡 단위로 녹음과 믹스 마스터까지 해주던
J&J에서 녹음을 하게 되고 형님들도 알게 된다.

2012. 01. 06.
데모 상태로 존재하던 Stay를 무척 좋아했지만
밴드로 구현하기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그냥 어쿠스틱 버전이 그대로 좋았는데
이 악기 저 악기 들어오면 뭐랄까
그저 목적없는 연주를 하게되기 마련이다.
안 군이 아이디어를 내서 4/4에서 6/8으로
박자를 바꿨고
그러다보니 좀 더 격정적인 밴드 편곡이 가능했다.
이 곡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근데 우리 곡 전체를 통틀어서
다른 사람들이 가장 좋다고 해준 곡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팝레의 대표곡이 되어버렸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