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버지 하면 술을 떠올릴만큼
애주가셨다.
회사에서 책임있는 자리에 올라갈 수록
술자리가 잦아지고
우리는 저녁 식탁에서 기다리다가
안오시면 안오시나보다 하고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제발 밖에서 먹고 온다고
연락만이라도 해달라고 하셨다.
그 때는 다들 그랬었나보다.
술을 드셔도 거의 12-1시에는 오셨었는데
그렇게 주무시고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는걸 보고
어른은 참 힘든거구나 싶었었다.
2. 내가 어른이 되고 종종
아버지와 술을 했었다.
아버지는 반주를 싫어하셔서(나도 그렇다)
저녁 다 드시고 한 9시 쯤
나한테 술마시자고 하고 싶은데
직접 그렇게 말하긴 쑥스러우셨는지
돌려 말씀하셨다.
냉장고에 소주 좀 있나?
혹은 만원 한 장 주시면서,
슈퍼가서 소주 한 병 사온나.
이게 같이 마시자는 의미였다.
그렇게 종종 밤에 마셨던 기억이다.
3. 당시 성공한 회사원들이 그렇듯
아버지도 종종 위스키나 와인을 선물받았고
위스키는 나름 아껴하며 보관은 하셨지만
워낙 소주파이셔서 그런지
위스키를 잘 드시진 않았다.
그래서 대학생 때 위스키 한 병을 얻어와서
아마 발렌타인 17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동기들이랑 마셨었는데
그게 우리의 첫 양주 경험이었다.
그 후로도 종종 얻어와서 마셨는데
발렌타인 마스터즈도 기억이 난다.
4. 아마 대학원 다닐 때 같은데
한 동안은 집에 내려가면 아버지와
위와 같은 9시 패턴으로
위스키를 마셨었다.
엄마가 육포나 오징어도 구워오고
쿠키 같은 것도 내오고 그러셨다.
아버지도 내심 그게 좋으셨나보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날이었다.
그 날은 길이 막혔는지 밤 9시쯤 도착했는데
아버지가 거실에서
개막식을 티비로 틀어놓고
위스키 한 병과 잔 두 개를 놓고
조용히 기다리고 계셨다.
직접 말씀은 못하시지만
좋아하고 기다리는게 있다는걸 보니
다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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